3년 전, 2021년 7월 나는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기왕이면 검찰청에서 일하는 수사관이 되고 싶어서 검찰사무직을 준비했다. 국어, 영어, 한국사가 공통과목이었고,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전공과목이었다.
두 달 정도였던 거 같다. 인터넷 강의를 듣다 보니 이걸 일 년 만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법 공부라고는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며 저작권법 밖에 공부해 본 적이 없던 내가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보고 있으니... 강의를 들으면서 판례 같은 부분을 설명할 때는 재밌기는 했는데 기출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차츰 방황이 시작됐다. 인터넷을 뒤지며 다른 직렬들도 많이 찾아봤다. 그러다가 전산개발직을 알게 됐다. 전산직은 컴퓨터일반과 정보보호론을 공부해야 했다. 기출문제츨 좀 풀어보니 세 개 중에 두 개 정도는 맞출 수 있었다. 평소에 신기술 등 미디어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에 친숙하게 느껴졌다. 대학에 편입하기 전에 사진과 영상을 전공하며 편집 프로그램이나 카메라와 같은 전자기기를 자주 접했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인터넷 강의 제작업체와 서버 제작 업체 홍보팀에서도 잠시 일했는데, 영상미디어든 서버든 IT 기술과 관련된 곳에서 일했던 공통점이 있다.
전산개발직 시험은 정보기술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제한경쟁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전문가'라는 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사진과 영상을 전공하던 시절에 전문성을 키우려 취득한 자격증이었다. 지금은 자격증이 가산점 항목이 되어서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전산직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원투펀치 맞고 정신이 혼미해져 있던 찰나에 전산개발직으로의 방향 전환은 괜찮아 보였던 선택지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이때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공무원이 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거라 생각한다.
공무원이 되겠다고 결심한 지 정확히 일년 후인 2022년 7월, 나는 국가직 9급 전산개발직에 합격했고, OO청 소속 국가직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공무원이 된 지 벌써 2년이 지났고 3년차가3년 차가 됐다. 보통 직장에서 3년 차가 되면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이나 애착이 생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전산개발직에 합격해서 국가공무원이 됐는데, 전혀 관련 없는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자부심은커녕 매일 일을 해봤자 물경력만 쌓여가니 무기력증에 사로잡힌다. 물론 지금 있는 곳에서 정년까지 앉아있다 나올 생각이라면 좋은 직장이기에는 틀림 없다. 직장에서 버려질 일이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내 자아실현과 공무원 조직 밖으로 나가서 나의 삶이다. 조직의 안정 속에서 나는 나만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행정 업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일은 묵묵히 한다. 이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잘못도 아니고 해결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영혼 없는 말단 공무원이 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7급 시험을 준비해야 할까? 그러면 뭐가 달라질까? 일단 작년에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놓은 건 잘한 거 같다. 정보보안기사 자격증도 욕심이 생겨서 책은 샀는데, 이 방향이 맞나? 실무 개발 역량을 쌓는 게 먼저 아닐까? 그래야 지금 물처럼 채워지는 경력 말고 진짜 내 역량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내린 결론은 공무원 조직 밖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개발 공부를 시작하고,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나씩 완성해보려고 한다. 이 공간이 내 미래를 다시 열어줄 열쇠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부터 한 걸음씩 나아가보려고 한다.
면직할 용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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